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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소개
영광의 지명과 연혁은 『삼국사기』에 처음 등장한다. 백제 때에는 무시이군(武尸伊郡) (물이군)이라 하였는데, 신라 35대 경덕왕景德王 16년(757)에 대대적인 지방통치조직 개편과 군현명 개정작업으로 무령군(武靈郡)으로 개칭하여 장사(長沙), 무송(茂松), 고창(高敞)의 3현(縣)을 관할하였다.
영광군의 변천 계보는 『삼국사기』, 『고려사』, 조선시대 지리지 등에서 무시이군→무령군→영광군으로 일관되게 서술되고 있다.
무령군은 본래 백제의 무시이군인데 경덕왕이 명칭을 바꾸었고, 지금(高麗)은 영광군(靈光郡)이라 한다. 영현(領縣)은 셋이다. 장사현(長沙縣)은 본래 백제의 상로현(上老縣)인데 경덕왕이 개명하여 지금에 이르고, 고창현(高敞縣)은 본래 모량부리현(毛良夫里縣)인데 명칭을 바꾸어 지금에 이르며, 무송현(茂松縣)은 본래 백제의 송미지현(松彌知縣)인데 경덕왕이 이름을 바꾸어 지금에 이른다.
통일신라시대 지방제도의 골격은 소위 나말여초(羅末麗初)로 지칭되는 신라말~고려초기의 격변기에 변모되어 갔다. 왕건에 의한 반도의 재통일 후 고려 현종(顯宗)대까지 여러 차례에 걸친 대소의 군현체제 개편작업을 통하여 영광은 새로운 중심지로 부상하였고, 당시 지방통치조직 개편으로 태조 23년(940) 무령군은 영광군(靈光郡)으로 개명하였다.
영광이란 지명은 당시 중앙관청에서 정한 이름으로, 지명이나 성(姓) 등에 있어 통일 신라시기에 중국 한식(漢式)이 확산되고, 고려태조 왕건의 후삼국 통합 이후 전국 군현의 개편과 함께 군현 토성을 분정(分定)하면서 한화(漢化)가 정착되었다. 지명이란 말을 풀이하면 땅(지역)에 붙은 이름이 된다. 그리고 지명은 그 지역의 지리적 특성에 따라 생성되거나 명칭이 부여되었다. 영광이란 지명을 불(佛)과 연관 짓기도 하지만 지명의 의미는 신령스런 빛의 고을로, 자연의 영묘한 빛이 반짝이는 은혜로운 지역이란 뜻을 담고 있다.
이후 영광은 고려 성종(成宗) 14년(995)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고려 현종(顯宗) 9년(1018)까지 정주(靜州)로 칭하고 별칭으로 오성(筽城)이라 하였고, 1018년 지명이 영광으로 복귀되었다.
※ 출처: 영광군지 (제4권 성씨와 지명 그리고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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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旧名) | 백제 | 경덕왕 개명 | 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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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이군(武尸伊郡) | 무시이군(武尸伊郡) | 무령군(武靈郡) | 영광군 |
고록지현(古祿只縣) | 염해(鹽海) | ||
아로현(阿老縣) | 갈도현(碣島縣)(육창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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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명(旧地名) | 현재 | 구지명(旧地名) | 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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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면(東部面) | 영광읍 | 마산면(麻山面) | 군남면 |
서부면(西部面) | 외간면(外間面) | 군남면 | |
도내면(道內面) | 육창면(陸昌面) | 군남면 남창리 일대 | |
대안면(大安面) | 대마면 성산리 일대 | 염소면(鹽所面) | 염산면 |
마촌면(馬村面) | 대마면 | 금마면(今麻面) | 백수읍 |
무장면(畝長面) | 묘량면(畝良面) | 봉산면(奉山面) | |
황량면(黃良面) | 구수면(九水面) | ||
관산면(官山面) | 군서면 | 진량면(陳良面) | 법성면 |
남죽면(南竹面) |